‘탕자에서 성자로’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혹은 어거스틴, 354∼430)의 삶에 대한 선입견은 과장되었거나 단편적인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를 이해할 때, ‘서양의 스승’ 혹은 ‘은총의 박사’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유난히 많은 기록들은 그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특히 ≪고백록≫은 스스로 고백하고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소개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자료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로마문화권에 속한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럽문화의 중심지를 향유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백록≫을 서양사 연표에 대입해 보면, 그는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Thagaste)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지중해를 끼고 로마를 가까이 할 수 있는 문화적 조건을 지녔다.
학력을 굳이 말한다면, 기초적인 초등교육 이후 고향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마다우라에서 365년부터 369년까지 공부했던 시절,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었던 듯싶다. 하지만, 그는 영락없는 말썽꾸러기로 불량스러운 방황을 하게 된다. ≪고백록≫ 제2권에서 말한 것처럼,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잠시 쉰 것은 369년경이다. 그리고 371년경 카르타고에 유학하여 수사학을 전공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은 절정에 달한다. 사생활로 보면, 아데오다투스의 생모와 동거생활을 했고 372년경 아들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인 측면 혹은 지적 측면에서 보면, 이 시절 그는 마니교에 심취했다.
375년, 그는 고향에 돌아와 수사학을 가르쳤고, 이듬해 카르타고에 가서 수사학 교수로 활동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에 간 것은 383년경이다. 당시 세계문화의 중심지 로마에서 그는 수사학 교수로 명성을 쌓았다. 그리고 로마시의 공식 파견을 받아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이때 암브로시우스 감독을 만난다. 그는 점차 마니교에 흥미를 잃었고 그들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386년 밀라노의 정원에서 그는 결정적인 회심을 체험하고 기독교 신앙인으로 전향한다. 이후 밀라노 북쪽의 카시치아쿰(Cassiciacum)에 머물면서 세례 받을 준비를 하며 경건생활을 한 후, 밀라노에 돌아와 아들 아테오다투스, 동료이자 후배인 알리피우스와 함께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생활을 하고 싶어 로마 남쪽의 오스티아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387년 어머니 모니카를 여읜다. 그는 로마에 몇 달간 머물며 집필 활동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원을 세운다. 그때가 388년경이다. 그의 아들 아데오다투스가 이때 죽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서양의 스승으로서 진면목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391년 히포 교구에서 성직자로 세움을 받은 어간부터일 것이다. 특히 395년 히포의 주교로 선출되어 교회를 위해 헌신한 그의 활동들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장으로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자취들이다. 그의 불후의 명작 ≪고백록≫을 쓴 것이 397년부터 4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후 도나티스트 논쟁을 통해 교회 지도자로서 진면목을 보여주었으며, 펠라기우스 논쟁을 통해 은총의 중요성을 확립하는 등 왕성하게 집필했고 열정적으로 목회했다.
서기 410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로마가 함락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3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너져 내리는 로마를 바라보면서, 시간이 지나면 흘러가고 쇠망할 한시적인 가치들을 넘어 영원불변하는 참 진리의 소중함을 글로 남겨, 후세를 일깨우고 있다. 포스트모던을 기치로 하는 우리시대의 문화에는 인간 해방적인 측면도 깃들어 있지만, 영원한 절대 진리를 와해시키려는 시도가 도사리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특히 인류를 위한 클래식이자 오늘을 위한 나침반 혹은 내비게이션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백록≫은 진리를 찾아가는 여행의 바른 나침반 혹은 내비게이션이라 하겠다.
해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의 ≪고백록(Confe ssiones)≫은 영원한 고전이다. 인간에 관하여, 내면의 진리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과 신(神)1)의 관계에 관하여 처절하고도 실존적인 탐구를 통해 인간의 인간됨을 위한 탁월한 통찰을 열어준다. 하지만 판타지 형식으로 구성한 것도 아니고 단숨에 써내려간 문학 작품도 아니다. 그래서 재미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100여 권이 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중에서 ≪고백록≫은 ≪삼위일체론(De Trinitate)≫, ≪신의 도성(De Civitate Dei)≫과 함께 불후의 3대 명저로 꼽힌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개인을 위한 변명이나 참회의 기록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안에 죄인으로서의 인류, 즉 인간이 들어 있다. 그의 ‘고백’은 현행법 위반자의 참회 수기도 아니고 독백도 아니다. 추상적 픽션은 더구나 아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존적 구체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굳이 ‘고백’이라 이름 붙이는 것은 원제 ‘Confessiones’가 지닌 어원상 의미, 이를테면 ‘con(더불어)+fiteri(말하다)’로 이해를 하든 혹은 다른 의미로 해석하든 간에, 이 책에 담긴 생각과 통찰이 신 앞에서 인간의 정체를 고발하는 자기 발견과 영원자를 향한 찬양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태상 자서전(autobiography)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 책은 루소, 톨스토이의 것과 함께 3대 고백록 또는 참회록에 속한다. 그러나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라는 특정한 개인의 심리적이고 영적이며 지적 여정을 그린 자서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 기도가 담겨 있고, 시간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으며, 창세기 주석이자 신의 영광에 대한 찬양이 담겨 있다. 이 점에서, ≪고백록≫은 루소나 톨스토이의 경우처럼 개인의 체험담이나 강론을 위한 전문적 교과서가 아니다. 더구나 개인의 사적 경험만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죄에 대한 참회에만 몰두한 것도 아니다. 신앙 고백에서 우러나온 깊은 성찰과 신학 및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히포의 주교가 된 지 2년 후인 397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401년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그에게는 중요한 집필 동기가 있었다. 스물아홉 살 되던 383년, 명예와 가치를 얻기 위해 로마로 향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5년 후 그리스도인이 되어 북아프리카로 돌아왔다. 그의 회심과 변화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단행본을 출판하려는 의도로 쓴 것은 아니다. 조금씩 기록했던 글을 모아 ‘인간영혼에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부제로 책을 펴냈다. 이러한 이유로, 고도의 치밀한 집필 계획이나 반전 등을 기대할 수도 없고, 해석상의 이견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총 13권 273장으로 구성된 ≪고백록≫의 구성에 대한 의견부터 크게 두 가지이다. 두 부분으로 나누는 학자들은 1권에서 10권까지를 아우구스티누스 개인의 회고로, 11권에서 13권까지 시간과 영원에 대한 통찰 및 창세기 주해로 구분한다. 대개,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경우가 더 많은 듯싶다. 1권부터 9권까지 아우구스티누스는 386년 32세에 체험한 자신의 회심을 정점으로 삼아, 살아온 시간들을 회고하며 구원의 은총을 찬양한다. 10권에서는 회심의 주체인 자아와 기억에 대한 성찰을 통해 시간과 영원에 대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그리고 11권부터 13권까지는 창세기 주해를 통해 구원의 원천이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창조 신앙을 고백한다.
이러한 구분법을 떠나,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전체의 흐름에서 본다면, 신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기소하고 신을 찬양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과거의 죄악에 대한 참회와 자아의 부정을 통해 영원한 진리의 존재인 신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정욕과 습관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의 실존적 죄악을 고발하고, 기억에 대한 고찰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해석을 시도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신을 향한 영혼의 영적 추구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신앙적 요소를 철학적 견지에서 풀이하여 말하자면, 영원불변의 진리를 찾아가는 지적 탐구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진리를 사랑하는 자’로서, 진리에 대한 실존적 체험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고백록≫이다. 해석자들의 평가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철학 및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교리의 적절한 혼합을 넘어 신기원을 이루었다. 그의 철학적, 신학적 성찰은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이라는 두 줄기를 하나로 만들어낸 새로운 물줄기의 근원이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통해 펼쳐놓은 인간론, 시간론, 행복론 등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변증법적으로 재해석하고 창조적으로 제안한 신학적, 철학적 논제들이다.
특히 내적 인간(inner human)에 대한 탐구는 독창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죄의 속성에 대한 분석에서 그는 인간 영혼의 내향성(inwardness)을 진지하게 성찰한다. 그는 젖먹이에게도 드러나는 죄의 본원적 특성에 의해 인간을 죄인이자 구원이 필요한 존재로 규정한다. 물론 인간의 이타적 사랑의 가능성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평도 따를 수 있지만, 내면세계를 향한 아우구스티누스적 접근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일생 동안 붙잡았던 문제, 즉 ‘악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은 어떻게 해야 악을 극복하고 행복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인간에 대한 내면적 이해를 통해 해소된다. 그에 따르면, 악이란 인간의 자유의지를 남용한 것이며 사랑의 왜곡이다. 인간은, 마니교가 말하는 것처럼 악의 신에게 악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를 지은 존재임을 깨닫기까지 길고 험난한 방황이 있었다. 그를 ‘탕자에서 성자로’ 변한 사람이라 부를 수 있게 된 대부분의 일이, 악에 대한 질문과 연계되어 있었다. 밖으로 나가 물질적 실체에 놀아나는 동안 그는 답을 얻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 영혼의 참된 가치를 발견했을 때, 그는 악에 대한 모든 오해와 왜곡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진리의 인식에서 내면성은 더욱 중요하다. 흔히 ‘조명설’이라 부르는 그의 인식론은 내면세계의 탐구를 통해 얻어낸 값진 결론이다. 그는 진리의 인식에 관한 성찰에서 플라톤적 설명을 넘어선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지성의 힘만으로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 진리의 인식을 위해서는 진리 자체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 이 말 안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식론이 함축되어 있다.
시간에 대한 성찰에서도 내적 인간의 개념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물체의 운동으로 설명하는 그리스 철학의 관점을 넘어 실존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시간의 문제를 다룰 때, 영혼과 기억에 대해 성찰한다. 시간을 영혼의 팽창으로 보는 그의 관점은, 과거의 기억, 현재의 직관, 미래의 기대를 말하는 대목에서, 시간을 의식의 문제로 설명하는 독창성을 보여준다.
시간의 문제는 또한 인간의 실존 해명에 중요한 단초가 된다. 가변적인 것과 불변하는 것, 그리고 창조된 존재와 ‘스스로 있는 자’, 시간적 존재와 영원의 존재를 대비시키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을 불완전한 결핍의 존재라고 제안한다. 인간의 결핍은 영원불변의 존재를 통해 해소될 수 있으며, 비로소 진정한 안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제의식은 그 해결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한 가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을 때 당혹스럽기도 하고 분위기가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대목이 있다. 11권부터 13권까지 나오는 창세기에 관한 주해 부분이 그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 부분을 굳이 부각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한 이유로, 심지어 9권 혹은 10권까지만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들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창세기 주해 부분이 전문적인 성서 연구로 보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고백으로 보아야 한다. 창조주에 대한 일종의 찬양 형식의 고백인 셈이다. 특히, 마니교에 놀아났던 시절의 아우구스티누스와 대비시켜 볼 때, 창조 신앙에 대한 확고한 고백이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철학적 사유의 근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라틴어 수사학의 전문가였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얼마나 고전에 해박했는지, 그리고 그가 이 고백을 하기까지의 신의 은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려한 문체가 빛나는 책이다. 그가 말년에 자신의 저술들을 재정리 혹은 보완하면서 남긴 ≪재론고≫에서 ‘≪고백록≫ 제13권은 나의 악행과 선행을 통해 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책’이었다고 회고한 것처럼, ≪고백록≫은 회심 이야기만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열세 권 전체가 읽혀져야 마땅하다.
너무 많은 번역본 틈바구니에서 또 하나의 번역을 내는 역자로서, 짧지만 심오하고 지루한 듯하지만 명쾌한 이 고전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정중히 초청하고 싶다. 참고로, 라틴어-영어 대역판인 윌리엄 와츠(William Watts) 역, ≪St. Augustine’s Confessions≫(Harvard Univ. Press. 1912/1968)를 원전으로 삼고, 최민순 역, ≪고백록≫(바오로 딸, 2007), 선한용 역,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대한기독교서회, 1990)을 참고하여, 오역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음을 밝혀두면서, 본 발췌 번역본이 이 책의 본래 취지까지도 충분히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역자 소개
문시영은 숭실대 철학과와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을 마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에 있어서 행복의 문제>로 철학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또한 장로회신학대학원(M. Div.)을 마치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풀러 신학교에서 D. Min.과정을 공부했고, 시카고 대학교(Univ. of Chicago)와 에모리 대학교(Emory Univ.)에서 방문교수로 연구했다. 현재 은혜 중심의 교회윤리 확립을 위한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NICE) 소장이며, 남서울대 교수(교목실장)이다.
지은 책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행복의 윤리학≫, ≪생명복제에서 생명윤리로≫, ≪은혜윤리≫, ≪긍휼−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하는 은혜윤리 묵상≫ 등 십여 권이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학≫, ≪책임윤리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시대의 기독교윤리≫ 등을 번역했다. <덕의 윤리에서 본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 <자유의지론에 나타난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개념> 등 50여 편의 학술논문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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