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모스 Marcel Mauss (프랑스, 1872 ~ 1950)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는 1872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스는 삼촌인 에밀 뒤르켕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기 때문에 그의 사상 또한 상당한 정도로 물려받았다. 모스는 1893년 보르도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받고 바로 파리에 정착해 이곳에서 프레이저(J. Frager)와 타일러(E. Tylor)의 책들을 통해서 인류학에 입문했다. 1901년 모스는 고등 연구원(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에서 민족학 방법을 강조하며 ‘원시 민족들의 종교역사’를 강의한다. 이를 통해서 주어진 자료들을 평가하고 분석해 이론화하는 민족학적 방법론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특히 모스는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프랑스 인류학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모스는 사회주의적 열정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예술적 감성도 풍부해서 언제나 새로운 사고에 개방적이었다.

1904년에는 <위마니테(L’Humanité)>지의 창간에 참여하고 편집을 담당했으며, 1920년부터는 <민중(Le Populaire)>지에 정치적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1925년 민족학 연구소(Institut d’Ethnologie)를 설립하고, 1931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사회학 분과장으로 선출되었다. 파리 대학교에 민족학 연구소를 설립해 인류학을 독자적인 학문으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는 민족학적 방법을 엄밀하게 발전시키고, 표상과 실천, 관념과 행위 등의 개념을 구분하고 이를 구체적인 민족지학적 자료들과 연계해서 설명하고자 했다. 즉, 그는 프랑스 제1세대 현지 조사 인류학자 세대를 구성시켰던 것이다.


해설                      

이 책은 1989년 PUF에서 출판한 ≪Sociologie et anthropol- ogie≫의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습니다.

모스의 ≪증여론≫은 원래 <사회학 연보>(1923∼1924)에 실렸던 논문이다. 이것은 다시 1950년에 클로드 레비ᐨ스트로스가 서문을 쓴 ≪Sociologie et anthropologie≫(PUF)에 다른 7개 논문과 같이 실렸다. 이 편역본은 이 책 3판(1989)의 145쪽부터 179쪽 사이에 실린 것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2002년에 ≪증여론≫(한길사, 이상률 역, 류정아 해제)으로 완역된 바 있다. 본 편역서는 기본적으로는 1989년 PUF에서 출판된 것을 기준으로 했으나, 2002년에 출판된 번역본은 모스의 원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발췌된 내용은 전체 원문의 30% 정도에 해당하며, 본문의 원문을 축약적으로 요약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장들을 발췌해 완역하는 형식을 취했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 문장을 연결하기 위해서 약간의 윤문이 가해졌을 뿐 문장들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인류학은 물론, 사회학이나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종교학, 정치학, 경제학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일반 교양서적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전문적 연구 지침서로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책이다. 이번 편역서는, 이 책이 명성에 비해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힘들 정도로 난해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독자 모두가 ≪증여론≫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정리하고자 했다. 훌륭한 고전이란 현대사회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책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증여론≫ 편역본을 통해서 독자들이 고전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옮긴이                  

류정아는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4년 프랑스 고등 사회과학 연구원(École des Hautes Études en Sciences Sociales)에서 니콜 벨몽(Nicole Belmont) 교수의 지도로 사회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논문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축제의 의미 변화 연구>이며, 1998년 ≪전통성의 현대적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판되었다. 역서로 ≪축제와 문명≫이 있고, 저서로 ≪축제인류학≫, 공저로 ≪유럽의 축제문화≫, ≪축제문화의 제 현상≫, ≪축제로 이어지는 한국과 유럽≫, ≪축제와 문화적 본질≫, ≪시각이미지의 힘≫, ≪한국사회의 비판적 지방 읽기≫, ≪미래사회의 인구구조와 문화수요≫, ≪한국의 지역문화≫ 등이 있다.

현재 한국 문화 관광 연구원에서 연구 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문화 정책적 연구에 인류학적 심층 조사 방법론을 접합시켜 정책의 효과를 높이는 연구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 축제 실태 분석, 지역 문화 현황 및 지역 문화 발전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 여성 문화 정책의 필요성 등과 관련된 정책 연구를 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Il est inutile d'aller chercher bien loin quel est le bien et le bonheur. Il est là, dans la paix imposée, dans le travail bien rythmé, en commun et solitaire alternativement, dans la richesse amassée puis redistribuée dans le respect mutuel et la générosité réciproque que l'éducation enseigne.

무엇이 선이고 행복인가를 찾기 위해서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 그것은 주어진 평화 속에, 공동체와 개인이 서로를 보완해 갈 수 있는 리듬이 있는 노동 속에, 또한 교육으로 가르치는 상호 존중과 호혜적인 너그러움 속에서 축적되고 재분배되는 부 속에 있는 것이다.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10 14:37 2008/09/10 14:37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조르주 상드 George Sand (프랑스, 1804 ~ 1876)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다.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센 강변의 새 장수 딸로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좋아하는 루소의 책을 읽으며 고독한 소녀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한 후 <피가로>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6살 연하인 시인 뮈세,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베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으로, ‘정열의 화신’이자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해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주장한 처녀작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인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18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 등, 연이어 낸 소설들도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며 그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18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안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18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1844), ≪스피리디옹≫(1838∼1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상드는 다시 1844년 ≪잔≫을 필두로 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련의 전원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1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 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18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 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1858)과 ≪발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 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모두 180여 편에 달하는 글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시크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조르주 뤼뱅에 의해 26권으로 편집되었는데, 이 방대한 규모의 기념비적인 서간집은 세계문학사에서 서간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교환 서간집으로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뵈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 등이 간행되었다.



해설                      

이 책의 원전은 ≪Contes d'une Grand-mère≫(Les Editions de l'Aurore, 1982)입니다. 이 책은 그중에서 <픽토르뒤 성(Le Château de Pictordu)>을 완역한 것입니다.

상드가 쓴 동화들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불우한 소년 소녀들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참되고 바른 마음과 사랑, 진정한 자아 발견과 삶의 진실, 내적 성숙을 배우면서 꿈을 이루어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수녀원에서 생활하던 병약한 어린 소녀 디안은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집에 돌아오던 길에 마차가 고장 나서 픽토르뒤 성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디안은 성에서 요정을 만나게 되는데, 성에서의 이 하룻밤은 디안이 성장하는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디안은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재혼한다. 디안은 새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아, 늘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디안은 아버지, 의사 선생님과 유모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소녀였다. 이 이야기는 디안이 꿋꿋하게 성장하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세상에는 마음이 넓은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음이 좁은 사람이 마음이 넓은 사람을 항상 희생시키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최고의 기쁨을 아는 자는 주는 자와 용서하는 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수호신이나 요정이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수호신이나 요정을 보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지만 자신에게 도취해 있는 사람은 그들을 만날 수 없고 오직 정열과 헌신에 눈뜬 사람만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조르주 상드가 고향에서 ‘노앙의 할머니’가 되어 두 손녀에게 들려주려고 쓴 동화책 ≪할머니 이야기≫에 실린 14편의 동화 중에서 <픽토르뒤 성(Le Château de Pictordu)>을 완역한 것이다.



옮긴이                  

이재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교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된 상드와 쇼팽 애호가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으며, 뉴욕 상드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에시롤·노앙·상드협회 회원이었다. 현재 파리의 상드협회 회원이며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 주제 연구서 ≪상드 연구 1, 2, 3≫이 있고, 번역서로는 ≪상드 서간집 1, 2≫,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 전원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 등과 동화 ≪할머니 이야기≫가 있으며, 그 밖에 ≪쇼팽과 상드≫, ≪상드 전기≫, ≪상드 문학 앨범≫ 등의 저서가 있다.



본문 중에서               

...en réalité, ceux qui donnent et pardonnent connaissent les plus hautes jouissances, car c'est avec eux qui se plaisent les génies et les fées, esprits absolument libres dans leur manière de voir, qui fuient les personnes enchantées d'elles-mêmes et ne se montrent qu'aux yeux agrandis par l'enthousiasme et le dévouement.

실제로는 주는 자와 용서하는 자는 최고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수호신이나 요정을 보는 방법이 정말 자유자재라서 자기 스스로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정열과 헌신에의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10 12:54 2008/09/10 12:54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조르주 상드 George Sand(프랑스, 1804 ~ 187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다.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적인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센 강변의 새 장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한 후 <피가로>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6살 연하인 시인 뮈세,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당시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베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으로, ‘정열의 화신’이자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주장한 처녀작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인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18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 등, 연이어 낸 소설들도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며 그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18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안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18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1844), ≪스피리디옹≫(1838∼1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상드는 다시 1844년 ≪잔≫을 필두로 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련의 전원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1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 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18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 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1858)과 ≪발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 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모두 180여 편에 달하는 글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시크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조르주 뤼뱅에 의해 26권으로 편집되었는데, 이 방대한 규모의 기념비적인 서간집은 세계문학사에서 서간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교환 서간집으로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뵈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 등이 간행되었다.


해설                      

이 책의 원전은 ≪Contes d'une Grand-mère≫(Les Editions de l'Aurore, 1982)입니다. 이 책은 그중에서 <말하는 떡갈나무(Le Chêne parlant)>와 <신성한 꽃(La fleur sacrée)>을 완역한 것입니다.

조르주 상드가 고향에서 ‘노앙의 할머니’가 되어 두 손녀에게 들려주려고 쓴 동화 ≪할머니 이야기 1권≫(<픽토르뒤 성>, <코악스 왕비>, <장밋빛 구름>, <용기의 날개>, <거인 예우>), ≪할머니 이야기 2권≫(<말하는 떡갈나무>, <개>, <신성한 꽃>, <티탄족 오르간>, <꽃들이 말하는 것>, <붉은 해머>, <먼지 요정>, <난쟁이 귀신>, <왕눈이 요정>)에 실린 14편 중에서 <말하는 떡갈나무(Le Chêne parlant)>와 <신성한 꽃(La fleur sacrée)>을 완역해서 옮긴 것이다.

상드가 쓴 동화들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불우한 소년 소녀들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참되고 바른 마음과 사랑, 진정한 자아 발견, 슬기롭고 지혜로운 삶의 진실과 내적 성숙을 배우면서 자기 꿈을 이루어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옮긴이                  

이재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교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된 상드와 쇼팽 애호가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으며, 뉴욕 상드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에시롤·노앙·상드협회 회원이었다. 현재 파리의 상드협회 회원이며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 주제 연구서 ≪상드 연구 1, 2, 3≫이 있고, 번역서로는 ≪상드 서간집 1, 2≫,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 전원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 등과 동화 ≪할머니 이야기≫가 있으며, 그 밖에 ≪쇼팽과 상드≫, ≪상드 전기≫, ≪상드 문학 앨범≫ 등의 저서가 있다.



본문 중에서               

...Vieux chêne qui m'as parlé, dis-leur aussi quelquefois une bonne parole pour qu'ils t'aiment toujours comme je t'ai aimé.

내게 말을 해 주었던 묵은 떡갈나무여, 내 자손들에게도 이따금 좋은 말을 들여 다오. 그리하여 내가 그대를 사랑했듯이 그들도 그대를 사랑하기를 !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10 12:34 2008/09/10 12:34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조르주 상드 George Sand (프랑스, 1804 ~ 187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다.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센 강변의 새 장수의 딸로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좋아하는 루소의 책을 읽으며 고독한 소녀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한 다. 그 후 <피가로>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여섯 살 연하인 시인 뮈세,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베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으로, ‘정열의 화신’이자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해서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주장한 처녀작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인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18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 등, 연이어 낸 소설들도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며 그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18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안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18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1844), ≪스피리디옹≫(1838∼1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상드는 다시 1844년 ≪잔≫을 필두로 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련의 전원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1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 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18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 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1858)과 ≪발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 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 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모두 180여 편에 달하는 글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시크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조르주 뤼뱅에 의해 26권으로 편집되었는데, 이 방대한 규모의 기념비적인 서간집은 세계문학사에서 서간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교환 서간집으로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뵈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 등이 간행되었다.




해설                      

이 책의 원전은 ≪Contes d'une Grand-mère≫(Les Editions de l'Aurore, 1982)입니다. 이 책은 그중에서 <용기의 날개(Les Ailes de Courage)>를 완역한 것입니다.

조르주 상드가 고향에서 ‘노앙의 할머니’가 되어 두 손녀에게 들려주려고 쓴 동화책 ≪할머니 이야기 1권≫(<픽토르뒤 성>, <코악스 왕비>, <장밋빛 구름>, <용기의 날개>, <거인 예우>)과 ≪할머니 이야기 2권≫(<말하는 떡갈나무>, <개>, <신성한 꽃>, <티탄족 오르간>, <꽃들이 말하는 것>, <붉은 해머>, <먼지 요정>, <난쟁이 귀신>, <왕눈이 요정>)에 실린 14편 동화 중에서 이 책은 <용기의 날개(Les Ailes de Courage)>를 완역한 것이다.

상드가 쓴 동화들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불우한 소년 소녀들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참되고 바른 마음과 사랑, 진정한 자아 발견, 슬기롭고 지혜로운 삶의 진실과 내적 성숙을 배우면서 자기 꿈을 이루어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절름발이인 어린 클로피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꼽추 재단사에게 끌려갈 뻔했지만 도망친다. 선원이 되고 싶어 하던 그의 꿈은 신체적인 조건으로 좌절되지만 용기를 가지고 숲 속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숲 속에서 새들과 친구가 되어 자연생활을 하다보니 신체도 건강해지고 귀한 깃털을 얻어 돈도 벌게 된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자 가족들의 소식이 궁금해져서 가족을 찾아가는데, 자연생활을 접으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서 가족들과 생활하게 된다. 안정적인 생활이 지루해지자 약제사를 찾아가서 일자리를 얻게 되고, 그곳에서 한 남작을 만나면서 예전의 자연생활을 토대로 새들을 연구하고 박제하며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곧 익숙한 삶이 답답해지자 다시 예전의 자연생활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한 소년이 자연 속에서 멋진 청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이 동화는 교훈을 주고 있는데, 바로 자연은 이기주의와 비열함으로 가득 찬 사람의 본능을 용기와 헌신으로 바꾸어 인간 스스로 기적을 이루도록 한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위기에 처했을 때 날개가 생겨 위기에서 탈출하고, 위험을 피하지 않고 용기를 내 맞서게 된다. 그때마다 소년은 자연이 들려주는 비밀의 소리를 듣고 올바른 방향으로 일을 행하게 된다.

우연히 혼자 떨어져 나와 자연의 품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동굴에서의 궁핍한 생활과 그곳에서 용감히 맞서 싸웠던 난관들, 고독, 그 모든 것들이 끈끈한 유대관계로 다가왔다. 아주 엄격하다고 생각되는 자연도 제대로 이해하면 새들이 만끽하는 넓은 공간과 자유를 선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클로피네는 결국 물질과 명예에 개의치 않고 계속 열망하던 신비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자유롭게 여행하며 사물을 연구하고 터득해 나갔으며, 건강한 심신과 온화한 성품으로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클로피네는 자연으로부터 용기의 날개를 얻어 정신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클로피네는 오랫동안 건강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피로가 쌓였고 또 라포니에서 물오리의 생태를 연구하다가 걸린 감기 때문에 옛날 어린 시절처럼 다시 다리를 절게 되었다. 클로피네는 그동안 육체를 잘 단련해 왔고, 또 다리를 저는 것쯤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소장하고 있는 새들과 다량의 익명 소책자들을 여러 박물관에 우송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 소책자를 받아 본 학자들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도 몰랐지만 높이 평가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큼, 클로피네는 은둔 생활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클로피네는 고장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장 사람들은 클로피네를 남작 나리라고 불렀고 클로피네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바다에라도 뛰어들려 했다. 그래서 클로피네는 매우 행복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말년을 보냈다. 그가 죽은 뒤 그 그림들은 비싼 값으로 팔려나갔고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옮긴이                  

이재희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교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된 상드와 쇼팽 애호가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으며, 뉴욕 상드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에시롤·노앙·상드협회 회원이었다. 현재 파리의 상드협회 회원이며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 주제 연구서 ≪상드 연구 1, 2, 3≫이 있고, 번역서로는 ≪상드 서간집 1, 2≫,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 전원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 등과 동화 ≪할머니 이야기≫가 있으며, 그 밖에 ≪쇼팽과 상드≫, ≪상드 전기≫, ≪상드 문학 앨범≫ 등의 저서가 있다.



본문 중에서               

C'était le chant énergique et tendre de ses petits amis les esprits ailés de la mer, et ces voix caressantes lui disaient: ㅡ Tes ailes, ouvre tes ailes! nous sommes là! Clopinet sentit ses ailes de courage s'ouvrir toutes grandes...

바로 클로피네의 친구들, 바다요정들의 힘차면서도 부드러운 노랫소리였다. 그 다정한 목소리가 클로피네에게 말했다. “네 날개가 있잖아, 날개를 펴! 우리가 여기 있잖아!” 클로피네는 용기의 날개가 아주 크게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10 12:20 2008/09/10 12:20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라몬 고메스 데 라 세르나 Ramón Gómez de la Serna (스페인, 1891 ~ 1963)

라몬 고메스 데 라 세르나(Ramón Gómez de la Serna, 1891∼1963)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으며 보통 ‘라몬’이라고 불린다. 그는 일생 동안 소설, 연극, 평론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문학 활동을 전개했는데, 무엇보다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1910년 무렵부터 시작한 ‘그레게리아’라는 단문으로 된 새로운 글쓰기를 통해서였다. 이 새로운 문학 형식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예술의 비인간화≫를 집필하는 데 영감을 주는 등 기존의 관습적인 사고를 뒤엎는 데 기여했으며, 그를 20세기 초반 스페인 아방가르드 운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해설                      

국내 초역입니다.

이 책은 라몬 고메스 데 라 세르나가 일생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간 장르인 ‘그레게리(Greguerías)’가 실린 두 개의 텍스트 <Greguerías: Selecció́n 1910∼1960>[Cé́sar Nicolá́s(ed.), Madrid: Espasa Calpe, 1990]와 <Greguerías>[Rodolfo Cardona(ed.), Madrid: Cá́tedra, 2006]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전체 내용의 3분의 1 정도를 번역한 것입니다.

20세기 전반 우리는 문학, 미술, 음악,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이전 세기와는 현격히 다른 미학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를 흔히 아방가르드 미학이라 부른다. 이 아방가르드는 스페인에서 울트라이스모(Ultraísmo)라는 이름으로 나타났고, 그 선구자로 라몬 고메스 데 라 세르나가 언급된다. 그는 소설, 희곡, 비평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문학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에게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한 것은 청년기였던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일생 동안 계속해서 관심을 쏟았던 그레게리아였다. 고메스 데 라 세르나가 만들어낸 이 용어는 좀처럼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그는 이전의 예술과는 차별적인 어떤 장르를 생각해 내고 이를 이름 붙이기 위해서 너무 심사숙고한 흔적이 있거나, 흔하게 쓰는 말이 아닌 어떤 낱말을 마치 복권 추첨함에서 구슬이 나오듯 우연히 떠올렸다고 회상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그레게리아에 대해 고메스 데 라 세르나는 그 생성 원리가 ‘유머와 은유’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유머나 은유 모두 언어가 갖는 기존 의미의 일탈에서 비롯되기에 작가의 이러한 언급을 바탕으로 그레게리아를 연구하는 이들은 그레게리아가 은유, 사물의 모양, 소리의 유사성, 언어의 유희 등을 통해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말하자면 그레게리아는 너무 익숙해져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인간의 일상이나 사물의 단면을 다양한 언어 형식상의 기법을 통해 표현하여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레게리아는 이미 굳어버린 대상의 의미를 언어를 통해 다시 일깨우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고메스 데 라 세르나가 기존 사회를 구성하는 관습화된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을 처음 접하는 어린아이 같은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는 바로 기성 질서로 조직된 사회 구조와 초월적 앎의 체계를 벗어던지고 문학을 통한 자유로운 놀이의 미학을 실현시키는 장이다. 그러기에 코끼리를 타고 연설을 하는 등 그의 삶을 통해 전개되던 기행은 관습화된 삶의 모습을 타파하려는 문학적 사유가 구조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를 궁극적으로 설명하려는 형이상학에 대해 회의하며 그 종말을 선언하고 끝없이 변하는 인간 삶의 생동하는 모습에 오히려 우호적인 시선을 보낸 니체적 긍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고메스 데 라 세르나 문학의 성격이 유희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자체가 인식 가능하게 확실하고 자명한 세계가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말하자면, 19세기 말 20세기 초 세계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구하려던 계몽적 이성이 그 한계에 직면했을 때, 그는 그레게리아를 통해 삶을 설명하고 규정하던 관습적인 틀에서 벗어나 끝없이 생성되는 상상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레게리아는 고메스 데 라 세르나가 신문이나 잡지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일생에 걸쳐 작품 활동을 이어간 장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그레게리아를 집대성한 원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옮긴이                  

조민현은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연구교수다.

스페인 문학과 문화에 관련한 다수의 논문을 썼으며, 저서로는 ≪스페인 현대 소설론≫, ≪작품으로 읽는 스페인 문학사≫(공저)가 있고 역서로는 ≪안개≫, ≪서정시집·전설≫이 있다.



본문 중에서               

Se miraron de ventanilla a ventanilla en dos trenes que iban en direcció́n contraria, pero la fuerza del amor es tanta que de pronto los dos trenes comenzaron a correr en el mismo sentido.

El arco iris es la cinta que se pone la naturaleza despué́s de haberse lavado la cabeza.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두 기차의 창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랑의 힘이 너무 커서 갑자기 이 두 기차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무지개는 머리를 감은 후에 자연에 놓인 헤어밴드다.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10 10:55 2008/09/10 10:55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브램 스토커 Bram Stoker
 (아일랜드, 1847 ~ 1912)

[##_1L|2542869883.jpg|width="96" height="12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브램 스토커는 1847년 11월에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cm 장신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병치레가 잦았으며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병약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는 아일랜드의 동화나 민담, 전설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에도 불을 지폈던 모양이다. 그가 1882년에 첫 출간한 작품이 자신의 아들을 위한 동화 모음집이었다는 사실에서 어머니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브램 스토커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해서 과학을 공부했다. 그는 유명한 운동선수인 동시에, 철학학회나 역사학회 같은 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매우 적극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더블린 정부의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그는 승진을 거듭하면서 12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와 연극평론가로 활동했다. 이때 그가 썼던 연극평론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글을 우연히 읽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이 호기심에서 그를 식사에 초대했던 것이다. 이들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남녀가 첫눈에 반하듯이 처음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기투합하게 된 두 사람은 1905년에 어빙이 사망할 때까지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

1878년에 라이시엄(Lyceum) 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된 어빙이 스토커에게 극장 프로듀서 자리를 제안하자, 그는 추호의 미련도 없이 12년 근무했던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런던에서 그와 합류했다. 이때 그는 배우 지망생이었던 플로렌스 밸컴(Florence Balcomb)과 결혼한다. 그녀는 오스카 와일드의 구애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라이시엄 극장의 2인자로서 당시의 유명한 문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해서 코넌 도일,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스토커는 극장을 경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897년 ≪드라큘라≫를 출간하기에 앞서, 그는 ≪뱀의 고갯길(The Snake's Pass)≫이나 ≪샤스타의 어깨(The Shoulder of Shasta)≫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독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욱 창작에 박차를 가했다. ≪드라큘라≫는 그가 영국 국립도서관 등을 방문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6년 이상의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출간과 동시에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그가 쓴 많은 작품 가운데 ≪드라큘라≫만이 유일하게 계속해서 독자에게 읽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드라큘라≫의 출간 이후로 어빙과 스토커에게 여러 악재가 뒤따랐다. 1898년에 런던 외곽에 있던 거대한 무대장치가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극장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어빙과 스토커의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스토커는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어빙이 사망한 이후로도 그는 ≪칠성의 보석(The Jewel of Seven Stars)≫이나 ≪흰 벌레의 소굴(The Lair of the White Worm)≫과 같은 모험소설과 방대한 ≪헨리 어빙에 대한 개인적 회상(Personal Reminiscence of Henry Irving)≫을 비롯해서, 역사적 사실에 추측과 성찰이 가미된 ≪유명한 사기꾼들(Famous Imposters)≫을 발표했다. 이 마지막 책에서 그는 엘리자베스여왕이 사실은 여장한 남자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 문필가나 소설가로서 그의 존재는 미미했다. 1912년에 그가 사망했을 때도 동시대인들은 그를 다만 헨리 어빙의 조력자로서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해설                      

이 책의 원전은 니나 아우어바흐와 데이비드 스칼이 편집하고 노턴 출판사에서 출간한 ≪드라큘라(Dracula)≫(1997)이며, 원문의 6분의 1정도를 발췌해서 번역했습니다.

≪드라큘라≫는 고딕소설과 현대적 추리소설의 요소를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써 도시 고딕소설(Urban Gothic)이라 할 수 있다.

드라큘라≫에 고딕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동시에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그러한 질문과 무관하게 논의되거나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면서 성찰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텍스트다. 흔히 그러하듯이 단순히 흥미 위주의 대중적인 고딕소설로서 치부하기에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깊이 배어 있다.

≪드라큘라≫ 텍스트의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종교의 문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는 천국과 지옥, 구원과 저주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처럼 일상적인 문제의 하나로 보이기도 하지만, 19세기 당시의 빅토리아인들에게 종교는 매우 절실하고 절박한 삶의 본질적 문제였다. 특히 종교에서 초월과 신비의 너울을 걷어내고 역사적이면서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신앙에 의지하면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강한 신앙의 소유자였던 브램 스토커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으로부터 종교의 진리와 신앙의 가치를 옹호하고 대변하고 싶었던 듯이 보인다. 드라큘라는 뾰쪽한 귀와 지옥불처럼 타오르는 눈을 가진 전형적인 악마의 모습으로, 그리고 하느님 편에 서서 그와 대항해 싸우는 반 헬싱 일행은 천사의 모습으로 제시되어 있다. 가공할 힘과 변신의 초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교활하기도 한 드라큘라는 악마처럼 ‘죽지 않는 존재’다. 그럼에도 그는 십자가와 성체 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한다. 선과 악의 상반된 세력이 종교적인 언어와 관점으로 묘사된 것이다. 텍스트를 관통하는 일관된 대주제는 종교적 구원의 문제다. 유한한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지만 죽음은 동시에 축복이기도 하다. 죽어야만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흡혈귀에게는 영원한 삶이 허락되었지만 그것은 영원한 저주일 뿐이다. 그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존재, 살아 있는 죽음, 구원과 위안이 불가능한 지옥의 시커먼 삶이다. 죽음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신에게 버림받은 영원한 삶이다.



옮긴이                  

김종갑은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몸문화연구소 소장이다. ≪타자로서의 몸, 몸의 공동체≫, ≪근대적 몸과 탈근대적 증상≫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역서, 논문이 있다.


본문 중에서               

Your girls that you all love are mine already, and through them you and otherd shall be mine--my creatures, to do my bidding and to be my jackals when I want to feed.

너희들이 사랑하는 여자들는 이미 내 것이 되었다. 그 여자들로 인해서 너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나의 명령에 복종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노예가 될 것이다.


별점                     

[##_1L|9717496297.jpg|width="522" height="30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목차                  

[#M_목차 보기|목차 닫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드라큘라

옮긴이에 대해




_M#]


 

2008/09/10 10:19 2008/09/10 10:19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미국, 1850 ~ 1867)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드워드 벨러미(Edward Bellamy)는 1850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 인근의 치코피폴스에서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 청소년기에 광범위한 독서에 몰두하며 종교 및 군사적 문제에 심취했다. 1867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응시했으나 신체검사에 불합격했으며, 같은 해 뉴욕 주 스케넥터디에 있는 유니언 칼리지에 입학해 1년 정도 수학했다. 1868∼1869년 사촌 윌리엄 패커와 함께 독일을 여행했다. 1871년 매사추세츠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고향 치코피폴스에서 개업했으나 단 한 차례의 소송사건 수임 후 자진 폐업했다. 이후 언론계에 투신해 <뉴욕 이브닝 포스트(New York Evening Post)>, <스프링필드 유니언(Springfield Union)>지에서 주로 서평란을 담당했다. 1878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하와이로 2년간 요양을 다녀왔다. 1880년 동생 찰스와 <스프링필드 데일리 뉴스(Springfield Daily News)>를 창간해 2년간 운영했으며, 1882년 에마 샌더슨(Emma Sanderson)과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1891년 주간지 <신국가(New Nation)>를 창간해 직접 산업국유화 운동에 뛰어들면서 인민주의 운동과 제휴했다. 1897년 ≪뒤를 돌아보면서≫의 후속편 ≪평등(Equality)≫을 출간했고, 이듬해인 1898년 고향 치코피폴스에서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6대 1: 낸터킷 전원시(Six to One: A Nantucket Idyl≫(1878), 1878∼1879년 <스프링필드 유니언(Springfield Union)>에 연재하고 1880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헤이든호프 박사의 공정(Dr. Heidenhoff’s Process)≫, 1879년 <버크셔 쿠리어(Berkshire Courier)>에 연재하고 1900년 벨러미 사후 단행본으로 출간한 ≪스톡브리지 공작(The Duke of Stockbridge)≫, ≪러딩턴 양의 자매(Miss Ludington’s Sister)≫(1884), ≪뒤를 돌아보면서≫(1888), ≪평등(Equality)≫(1897), ≪맹인의 세계와 그 밖의 단편들(The Blindman’s World and Other Stories)≫(1898) 등이 있다.


해설                       

1967년 존 토머스(John L. Thomas)가 편집하고 서론을 쓴 하버드 대학 출판부 판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습니다.

이 책은 벨러미가 묘사한 서기 2000년의 사회구조의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하면서도 전체적인 줄거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발췌의 분량은 전체의 약 38% 정도입니다.

1850년에 태어나 1898년 4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생애를 살다간 에드워드 벨러미(Edward Bellamy)가 동시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꾸준히 연구되는 까닭은 누가 뭐라 해도 그의 대표작 ≪뒤를 돌아보면서: 2000∼1887(Looking Backward: 2000∼1887)≫(이하 ≪뒤를 돌아보면서≫)가 제시한 새로운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뒤를 돌아보면서≫는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베스트셀러가 되어 미국에서만 수십만 부가 팔렸으며, 곧 외국에도 소개되어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동시대인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현대 고전의 하나로 미국 대학생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뒤를 돌아보면서≫는 단순히 사회주의적 미래 사회를 그린 한 편의 베스트셀러로 머물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감동한 사람들은 벨러미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산업국유화론자 클럽을 결성해 공식 기관지로서 <산업국유화론자(Nationalist)>를 월간으로 발행하기도 했다. 이 클럽은 1891년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165개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한 호응을 얻었다. 이에 벨러미도 1891년 <신국가(New Nation)>라는 주간지를 창간해 직접 산업국유화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나아가 벨러미는 ≪뒤를 돌아보면서≫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평등(Equality)≫(1897)을 출간해 국유화 운동을 확산시키고자 했으나, 이듬해 지병인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사망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면서≫는 출간 직후부터 당대의 유토피아 문학과 공상과학소설(Science Fiction) 분야뿐 아니라 산업국유화 운동, 인민주의 운동, 사회주의 운동, 여권 운동 등 다양한 사회 개혁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일찍부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유토피아 문학에 대한 영향력은 일부 작가들이 ≪뒤를 돌아보면서≫의 인기에 편승해 유사한 제목을 붙이거나 심지어 주인공 줄리언 웨스트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는 등 수많은 모방 작품을 썼다는 사실과, 다른 작가들이 이 소설에 묘사된 새로운 기계문명과 사회구조를 빌려 썼다는 사실로 확인된다. 그래서 혹자는 ≪뒤를 돌아보면서≫가 후대에나 실현될 각종 기계문명, 예컨대 전화, 라디오, 쇼핑몰뿐 아니라 나아가 신용 카드까지 예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미국 공상과학소설의 효시로 보기도 한다.

아울러 미국 인민주의 운동의 경우 ≪뒤를 돌아보면서≫의 초창기 주요 독자층이 중서부 및 남부 농민이 주축을 이루었던 인민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과, 벨러미의 추종자들이 결성한 산업국유화론자 클럽(Nationalist Club)이 인민당(People’s Party)의 결성과 강령 채택에 적극 참여한 사실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사회주의 운동의 경우 대니얼 드리언(Daniel DeLeon)이나 유진 데브스(Eugene V. Debs) 같은 미국의 대표적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들이 사회주의자로 변신하는 데 ≪뒤를 돌아보면서≫가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다든가, 여권 운동의 경우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을 비롯한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뒤를 돌아보면서≫에 나타난 미래 사회의 여성상에 매료되어 벨러미의 추종자로 변신한 사실 등을 통해 미국의 사회 개혁 운동에 대한 ≪뒤를 돌아보면서≫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옮긴이                  

손세호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서양사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주립대학교(SUNY at Albany)에서 박사 후 연수 과정을 수료했고, 루이지애나 주립대 풀브라이트 미국학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건국대, 한양대 등에서 서양사와 미국사에 관한 강의를 했으며, 현재 평택대학교 미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학회 경력으로는 한국미국사학회, 한국아메리카학회, 한국서양사학회, 역사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미국의 미국사학회(OAH)와 아메리카학회(ASA)의 연례 학술 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하룻밤에 읽는 미국사≫(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눈으로 본 세계 역사 20: 미국의 독립과 발전≫(교원, 2006),≪눈으로 본 세계 역사 22: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발전≫(교원, 2006), ≪인물로 본 문화≫(공저, 방통대 출판부, 2005), ≪영화로 생각하기≫(공저, 방통대 출판부, 2005), ≪미국 역사학의 역사≫(공저, 비봉, 2000), ≪미국 사회의 지적 흐름≫(공저, 서울대 출판부, 1998)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서양 문명의 역사(하)≫(소나무, 2007),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공역, 휴머니스트, 2005),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공역, 소나무, 1998)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면서’를 뒤돌아보며>, <‘미국 역사 표준서’와 개정판을 둘러싼 논쟁>, <미국 대학의 자국사 교육의 역사와 현실>, <영미 노예제 폐지 운동과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미국 중등학교 미국사 교과서에서의 베트남 전쟁 서술>, <Edward Bellamy와 산업국유화 운동>, <Edward Bellamy의 공화적 사회주의>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How is the amount of the credit given respectively to the workers in different lines determined? By what title does the individual claim his particular share? What is the basis of allotment?”

“His title,” replied Dr. Leete, “is his humanity. The basis of his claim is the fact that he is a man.” 

그렇다면 서로 다른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신용의 총액은 어떻게 결정합니까? 개인은 어떤 권리로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주장합니까? 그 분배의 근거는 무엇인지요?”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사람이 지닌 인간성(humanity)이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그 사람이 인간이라는 사실이지요.” 리트 박사가 대답했다.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10 10:03 2008/09/10 10:03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루치우스 부르크하르트 Lucius Burckhard  (스위스, 1925 ~ 2003)

루치우스 부르크하르트(Lucius Burckhardt, 1925∼2003)는 1925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태어나 1955년 바젤대학교에서 국가 경제와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뮌스터대학교와 도르트문트대학교에서 사회학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1959년 울름조형대학에서 1년간, 1961년부터 1973년까지는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에서, 1973년부터는 카셀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울름조형대학과 취리히공과대학에서 강의했고, 독일공예연맹 기관지 <베르크(Werk)>의 편집장을 거쳐(1962∼1972) 독일공예연맹 회장(Vorsitzende, 1976∼1982)을 역임했으며, 바이마르건축대학에서 디자인 학부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1992∼1994)을 맡았다. 1980년대에는 사회경제적 관점에서의 도시 연구를 바탕으로, 아내 아네마리 부르크하르트와 함께, 산책을 통해 환경에 대한 사고를 정리하고 확립하는 학문인 산책학(Promenadologie 또는 Sparziergangswissenschaft, 영어로는 Strollology)이라는 고유의 학문 분야를 개척했다. 사회와 환경, 그리고 미학적 관점에서 쓴 그의 글들은 여러 책과 전문 잡지, 강연 등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이런 글들을 모은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design=unsichtbar)≫ 외에 1985년에 나온 ≪아이들이 혁명을 먹어 치운다(Kinder fressen ihre Revolution)≫와 2006년에 출판된 ≪왜 풍경은 아름다운가? 산책학(Warum ist Land-schaft schön? Die Sparziergangswissenschaft)≫이 대표적이다. 루치우스 부르크하르트는 1994년 생태학과 미학 부문에서 헤센 문화상을, 1995년 독일 연방 디자인 진흥상을, 그리고 2001년 스위스 디자인상을 받았다.


해설                      

국내 최초 번역입니다.

이 책은 ≪design = unsichtbar≫(1995)에 실린
총 42편(부르크하르트의 글 32편과 다른 작가의 글 10편)의 글 중에서 부르크하르트의 글 11편과 다른 작가의 글 1편, 인터뷰 1편을 발췌했습니다.

루치우스 부르크하르트의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부르크하르트가 1965년에서 1985년 사이에 여러 잡지에 기고하거나 강연회에서 발표한 글과, 현재 건축과 디자인 등 각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부르크하르트에 대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원서의 제목은 ≪design = unsichtbar≫다. 이 책은 부르크하르트가 1995년 독일 연방 디자인 진흥상 수상을 기념해서 발간되었는데, 책에 실린 여러 글들 중 부르크하르트의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를 본 역서의 제목으로 따왔다. 독일 연방 디자인 진흥상은 독일 디자인에 큰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데,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디터 람스(Dieter Rams)는 서문에서 사업가 대신 사회학자인 루치우스 부르크하르트를 선정한 이유로 ‘디자인 연구와 교육에 공헌했음’을 들었다.

옮긴이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바로 이 1995년도 독일 연방 디자인 진흥상과 관련해서였다. 당시 옮긴이는 <월간 디자인>의 독일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디자인이란 일반적으로 보이는 사물의 형태를 쓸모 있으면서도 미적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여겨오던 차여서,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제목이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사회학자가 어떻게 디자인 발전에 공헌해서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 독일 연방 디자인 진흥상을 받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이 책의 가장 대표적인 글인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원래 1980년 오스트리아의 린츠에서 열린 디자인 전시회와 포럼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에서 펴낸 카탈로그에 실렸었다. 린츠의 행사나 독일 연방 디자인 센터에서 펴낸 책의 취지는 모두, 형태와 기술적인 문제로 다루어지던 디자인 담론을, 보이지 않는 부분인 사회적 연관 관계로 확대시키자는 데 있다. 부르크하르트의 같은 제목의 글에서도 역시 이런 점이 주가 되고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디자인 이야기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데, 부르크하르트는 특유의 위트와 냉소를 담아 풀어간다.

이런 관점은 이어지는 글 <밤은 사람들이 만들었다>, <깨끗한 해결책 더러운 환경>, <좋은 형태와 좋은 색>, <어느 친환경적 개혁>에서도 계속 나타난다.

비록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design = unsichtbar)≫가 10여 년 전에 출간되었고, 또 여기 실린 글들이 30년 가까이 되기는 하지만, 환경과 에너지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요즈음에도 여전히 필요한 내용이 아닌가 한다. 물론 여기 있는 글들이 쓰인 당시와 지금의 사회는 차이가 있어서,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부르크하르트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지적하면서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염두에 둔 생각의 과정을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점이 우리의 사고를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독일은 대체 에너지 분야와 환경 보호에서 기술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그리고 법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많이 앞서나가 있는데, 그 배경에는 바로 부르크하르트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작업이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는 1960년대 후반부터 해당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글을 쓰는 등 다양한 작업과 실천을 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도 부르크하르트 글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옮긴이                  

박소영은 한국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고 1989년 독일로 건너가 보훔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근·현대 미술관 건축에 대한 논문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유학 중인 1994년부터 <월간 디자인>, <공간>, <산업디자인>, <디자인 네트>, <디자인 디비> 등의 독일 통신원으로, 독일 내 디자인 관련 소식과 글을 전해왔다. 현재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에 출강중이고, 2007년 삼청동 거리 전시회인 <인사이드 아웃사이드>를 기획하기도 했다.



본문 중에서               

언제 어디서 나머지 없는 개별 구상들이 계획된다고 할지라도, 다른 것과 이어진 부분은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계획된 구상도 나머지를 만들어낸다. 현실을 위한 계획은 따라서 이런 나머지의 존재를 미리 포함하고, 인간적인 행동을 고려한 구상하기이다. 운이 좋으면, 그런 구상하기는 우리들의 옛날 도시나 마을들처럼 서서히 성장해온 문화환경들이 고유하게 지녔던 그런 아름다움에 다시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흠이 없는 온전한 세계로 회귀란 말인가? 아니, 그 반대이다. 온전한 세계를 나머지 없이 만들 수 있다는 사고로부터 벗어나기이다.

Wo immer der einzelne Entwurf ohne Rest geplant ist, ergibt sich an der Nahtstelle zum anderen, ebenfalls perfekt geplanten Entwurf, ein Rest. Planen fur die Realitat ware also ein Entwerfen, das die Existenz dierser Reste schon einschließt, das mit menschlichem Verhalten rechnet. Solches Entwerfen wurde dann auch wieder, im Glucksfall, die Schonheit erreichen, wie sie unseren alten Staadten und Dorferen, der gewachsenen Kulturlandschaft, eigen war. Zuruck also zur heilen Welt? Ganz im Gegenteil: Abkehr von der Vorstellung, daß die heile Welt restlos machtbar sei.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09 18:00 2008/09/09 18:00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노트케르 Notker the Stammerer (독일,  840~912)

이 책의 저자인 말더듬이 노트케르(Notker the Stammerer, 840~912)의 라틴명은 노트케르 발불루스(Notker Balbulus)다. 노트케르는 프랑크 명문 가문 출신으로, 성 갈렌 수도원 부근에 있는 투르가우 지방에서 840년경에 태어났다. 어릴 때 그는 아달베르트(Adalbert) 밑에서 양육되었다. 아달베르트는 프랑크인들에게 강력한 저항세력이었던 작센족, 훈족, 슬라브족을 상대로 한 정복전쟁에 참여했던 프랑크의 용감한 전사였다. 노트케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이미 연로했던 아달베르트는 그에게 수많은 전쟁담을 들려주었다. 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노트케르는 이 책의 제2권에 나오는 샤를마뉴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성 갈렌의 수도원학교에 들어가 그 수도원의 수사였던 그리말트(Grimald)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말트는 당시 프랑크 왕국의 최고 지성으로 알려진 앨퀸의 제자였다. 성 갈렌의 수도원학교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를 두루 섭렵한 후, 노트케르는 스승의 뒤를 이어 그 수도원의 수사가 되었다. 수사가 된 후에 그는 주로 교사로서 활약했으며, 시와 음악, 저술에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신체는 가냘팠지만 마음은 강직했으며, 혀는 어눌했지만 지성은 번뜩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다가 912년에 사망했다. 1512년에 교황에 의해서 시복(beatification)되어 복자(the Blessed)의 반열에 올랐다.


해설                      

이 책의 원전은 ≪De Carolo Magno≫[Jaffé, Philipp(ed), de Carolo Magno, in Bibliotheca Rerum Germanicarum, Vol. Ⅳ, Monumenta Carolina(Berlin, 1867), pp.628∼700]입니다. <Charlemagne>[≪Two Lives of Charlemagne≫(trans. by Lewis Thorpe, Penguin Books, 1969) pp.91∼172]를 참조해 모두 번역했습니다.

샤를마뉴(Charlemange, 재위 768~814)는 서유럽 중세 전기를 대표하는 통치자로서 47년이라는 긴 통치 기간에 수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주변의 민족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정복전쟁을 벌여 서유럽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했으며, 그의 통치 시대에 프랑크 왕국은 역사상 전성기를 구가했다. 유럽 대륙에서 그가 다스리는 영토는 고대 로마제국의 유럽 영토에 필적할 정도로 광활했다. 샤를마뉴는 그의 지배력이 미치는 지역에 적극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보급하고 교회조직을 확대했다. 그 결과 서유럽과 그 주변 세계에 기독교가 널리 확산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독교 신앙과는 별개로 그는 또 서유럽의 각지에서 유명한 학자들을 프랑크 궁정으로 초빙하여 고전의 연구를 장려할 정도로 학문의 진흥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 프랑크의 궁정학교와 수도원학교를 중심으로 학문 연구가 활성화되어, 서유럽 세계는 중세 초의 문화적 암흑기에서 벗어나 이른바 ‘카롤링거조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학문의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

 이 책은 위대한 샤를마뉴 황제와 그의 가문에 관련된 수많은 사건과 일화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성 갈렌(St. Gall) 대수도원의 수사였던 말더듬이 노트케르(Notker the Stammerer, 840~912)는 샤를마뉴의 증손자인 샤를 비만왕(Charles the Fat, 재위 884~887)을 위하여 이 책을 저술했다. 비만왕은 883년에 성 갈렌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노트케르는 황금으로 휘황찬란하게 치장한 제복을 입은 왕의 화려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 왕을 직접 목격하고 감동을 받은 노트케르는 그 왕의 위대한 선조인 샤를마뉴를 위시하여 직계 조상인 루이 경건왕, 루이 독일왕, 그리고 샤를 비만왕과 관련된 사건들을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노트케르는 샤를 비만왕을 처음 목격한 그해인 883년 말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인 884년 전반기에 이 책의 제1권을 마치고, 바로 이어서 제2권을 쓰기 시작하여 887년에 제2권을 완성했다. 이 책을 오늘날의 학자들은 ≪샤를마뉴에 관하여≫ 또는 ≪샤를마뉴의 행적≫이라고 부른다. 옮긴이는 이 번역서에서 후자를 책의 제목으로 택했다.

이 책은 샤를마뉴의 전쟁이나 샤를마뉴의 후손들에 관해서는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해 준다. 중세 역사상의 핵심 사건인 800년 샤를마뉴 황제의 대관식 사건에 관해서는 아인하르트보다 더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이 사건에 관해서 아인하르트는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노트케르는 이 사건의 배경과 경위를 비교적 상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노트케르는 샤를마뉴의 외교관계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샤를마뉴는 외국에 적극적으로 사신들을 파견하면서 능동적인 외교를 전개했다. 외국에서도 많은 사신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샤를마뉴 궁정을 방문했다. 노트케르가 보고하는 국가 간 사신들의 방문기를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국제질서는 물론 왕들 사이에 선물로 교환된 물품의 종류까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노트케르가 훈족(Huns)의 성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마치 성채 안으로 들어가 아홉 겹의 성채를 한 겹 한 겹 들여다보면서 설명을 듣는 것과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노트케르의 이 책이 지닌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잘만 활용한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샤를마뉴와 샤를마뉴 후손들의 행적 및 외교관계는 물론 중세 사회의 일상에 관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옮긴이                  

이경구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콘스탄티누스 기진장(Donation of Constantine)’을 연구 주제로 설정해 지속적으로 공부해 오고 있다. 이 주제는 내용상으로 샤를마뉴의 부친인 피핀 단신왕으로부터 샤를마뉴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옮긴이는 그동안의 연구 과정에서 샤를마뉴와 그의 가문에 관련되는 기본적인 사실들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트케르의 ≪샤를마뉴의 행적≫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옮긴이의 주요 연구 성과물로는 ≪중세의 정치 이데올로기≫(느티나무, 2000), ≪꿰뚫는 논술 교과서≫(공저: 신서원, 2003), ≪만화 한국사․세계사 척척 논술≫(공저: 중앙재능북스, 2006) 등의 저서와 역서 ≪중세 이야기≫(공역: 새물결, 2003), 그리고 논문 <로마 교회와 프랑크 왕국의 제휴: 피핀의 쿠데타를 중심으로>(<서양중세사연구>제8집, 2001), <스테파누스 2세와 피핀의 상봉: 그 역사적 의미>(<서양중세사연구> 제9집, 2002),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작성 목적>(<서양중세사연구> 제11호, 2003), <신성로마제국의 출발점에 관하여>(<서양중세사연구> 제13호, 2004),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작성 시기>(<서양중세사연구> 제14호, 2004), <신성로마제국의 성격: 교황권과 황제권의 관계를 중심으로>(<서양사연구> 제37집, 2007),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적용 사례: 13세기 전반기의 교황들을 중심으로>(<호서사학> 제49집, 2008)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Since Charlemagne was already ruler and emperor of so many people in his own right, he should now in his glory be granted the title of Emperor and Caesar Augustus by the authority of the Apostolic See.

샤를마뉴는 이미 수많은 민족들의 통치자요 제왕으로서의 권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교황의 권위에 의해서 황제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아 영광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09 17:33 2008/09/09 17:33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

폴 아자르 Paul Hazard (프랑스, 1878 ~ 194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폴 아자르(Paul Hazard, 1878∼1944)는 파리 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아카데미 회원이었다. 저서로는 ≪프랑스 혁명과 이탈리아 문학≫(1910), 이 책에서 번역한 ≪유럽 의식의 위기(La crise de la conscience européenne)≫(1935), ≪18세기 유럽의 사상≫(1946) 등이 있다. 저서들의 제목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특히 18세기 문학과 사상사에 주요한 업적을 남겼다. 폴 아자르의 역사를 바라보는 참신한 관점은 세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었으며, 방대한 작업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는 그의 태도 또한 새로운 것이었다. 그가 독특한 점은 저술을 할 때마다 프랑스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면서도 유럽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기술을 이끌어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는 방대한 문학적 지식과 비교 문화적 지식에 의지해 유럽을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기술하는 문화사가였다.




해설                      

이 책은 1968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습니다

이 책은 근대 유럽의 정신적 지주라고 볼 수 있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걸친 지적, 사상적 흐름을 개관한 책이다. 비교적 온건한 보통 사람들의 사고보다는 논쟁적이고, 가차 없는 지성의 소유자들, 다시 말해 소위 합리주의적 철학자들을 주로 다루는 이 책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쟁점이 된 시대 의식을 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그는 문제의 해결을 보여주지 않는다. 와해된 시대의 후예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질서를 회복시켜 주기는커녕 오히려 질서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었으며, 엄밀히 말하자면 사상과 의식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는 우리는 폴 아자르의 이 책을 반론이나 비판서로 볼 수도 없다. 이 책은 차라리 고대 세계의 붕괴에 관한 묘사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그 붕괴를 조사하기 위해서 그는 정확한 사실들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정리하는 데에 그의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훌륭한 교수로서 폴 아자르의 장점은 모순처럼 보이는 시대적 의식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거를 통해 파괴와 재건, 그리고 새로운 종합의 과정으로 알기 쉽게 정리해 내는 데에 있다.

폴 아자르의 ≪유럽 의식의 위기≫는 출판 직후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호응을 얻은 책 중의 하나였다. 그의 참신한 관점이 우선 세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방대한 작업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는 그의 태도 또한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면서도 유럽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이 책을 이끌어갔다. 말하자면 그는 그의 방대한 문학적 지식과 비교 문화적 지식에 의지해 유럽을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기술했다. 물론 그의 방법이 전적으로 독창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비교적 자주 랑송에 의지해, 랑송의 연구 결과를 원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밀림의 유럽’을 한눈에 굽어보게 한 작가도 일찍이 없었다. 그는 방대한 자료의 그 시대를, 그래서 아직 아무도 감히 탐험 길에 오르지 않은 밀림을 용케도 헤쳐나갔으며, 그 결과를 한 장의 지도로 작성해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                  

조한경은 서울대에서 문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암재단의 지원으로 프랑스 리옹 3대학에서, 학술재단의 지원으로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연구 기간을 가졌다. 한국어의 프랑스어 번역으로는 ≪열두 띠 이야기≫, ≪쥐돌이는 화가≫, 프랑스어의 한국어 번역으로는 ≪저주의 몫≫, ≪종교이론≫, ≪에로티즘의 역사≫, ≪미덕에 관한 철학적 에세이≫,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비평과 의식≫, ≪에로티즘≫, ≪초현실주의≫ 등이 있고 저서로는 ≪변혁의 시대와 문학≫, ≪서양문예사조≫, ≪한국어 한자ᐨ불어 사전≫, ≪라모의 조카≫, ≪프랑스 현대문학의 이해≫ 등이 있다. 논문은 <절대인간 사드−부정의 극단, 극단의 부정>, <미술비평가 디드로와 비평적 태도>, <바타유와 에로티즘>, <리베르탱 소설연구: 에로티즘 또는 허무주의 철학> 등 다수가 있다.



본문 중에서               

A suivre les ces vastes mouvements, a voir les masses d'idees se desagreger pour se reformer
ensuite suivant d'autres modes et d'autres lois…

그 방대한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밀렸다가 부서지고, 부서지는가 싶으면 다시 합해져서 다른 양상을 보




이고 새로운 규칙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사상의 체계들을 바라보면서…



별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차                  

목차 보기



 

2008/09/09 17:19 2008/09/09 17:19
Posted by 지만지.

Leave your greetings here.